[4/26 목회칼럼] 봄이 왔습니다
- 3 days ago
- 2 min read
봄이 왔습니다. 길가의 나무들이 다시 연한 잎을 틔우고, 차갑던 바람 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스며듭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제 자리를 찾아오듯,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지금 어떤 문제로 마음이 무겁든지, 어디에 서 있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과 새로움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겨울이 길다고 느끼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어느 계절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Spring": unsplash.com/@joelholland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시며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세기 3:9)”라고 물으십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굳이 물으신 것은,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회개하며 나아오기까지 기다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다가오신 이 사건이야말로 은혜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주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그 자리는 회복의 자리, 곧 "봄"이 시작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피해 나무 사이에 몸을 감추며,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찾아오셨고, 봄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들은 두려움과 변명 속에 머물기를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시지만, 우리는 종종 그 은혜를 밀어내고 스스로 창조한 겨울 속에 머무르려 합니다.
때로는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혼날까봐 두렵고, 우리의 본 모습이 탄로날까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정말 회복이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불릴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때로는 지금의 상태가 편해서 그렇습니다. 변화가 싫어서, 변화에 따르는 노력과 불편함이 싫어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차차차선은 되어 보이는 현재의 잘못된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우리 인간의 죄성이고 연약함입니다.
김소엽 시인은 “이른 봄의 서정”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눈 속에서도 봄의 씨앗은 움트고
얼음장 속에서도
맑은 물은 흐르나니
마른 나무껍질 속에서도
수액은 흐르고
하나님의 역사는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건져 올리느니
· · ·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이어집니다:
인생은
겨울을 참아내어
봄 강물에 배를 다시 띄우는 일
지난 겨울을 참아내신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겨울을 잘 견뎌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고 계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미 봄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멈춘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일어납니다. 작은 걸음이어도 괜찮습니다. 짧고 긴 기도를 해보고, 다시 말씀을 펴 보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 보는 것입니다. 그 작은 순종들 위에 하나님께서 새 일을 이루십니다.
다시 봄을 여러분과 함께 맞을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부활의 기쁨과 소망이 우리의 모든 겨울을 깨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새 봄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일어나, 하나님이 이미 열어 놓으신 봄의 강물 위에 우리의 삶을 다시 띄울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