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3/8 목회칼럼] 성배는 어디에

  • 9 hours ago
  • 2 min read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하셨던 성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성배(Holy Grail)는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하신 잔을 가리킵니다. 어떤 전설에서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를 그 잔에 담아 영국으로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성배에 대한 집착은 아마도 중세 기독교가 성인들의 유물(Relics of the Saints)에 큰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연옥 교리가 강조되었고, 중세 교회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죽은 뒤 곧바로 천국에 가기보다는 연옥에 머무른다고 가르쳤습니다. 연옥은 영어로 purgatory라고 하는데, “몰아내다”라는 뜻의 purge와 어원을 같이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인 인간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연옥이라는 중간 상태에서 죄를 정화한 후에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변질되면서, 연옥에 머무는 기간이 이 땅에서의 어떤 행위나 특정한 물건을 통해 단축될 수 있다고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성인들의 유물을 소유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보증이었습니다. 중세 기독교의 유물에 대한 집착은 이런 배경 속에서 커졌고, 이후 종교개혁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종교개혁 당시 성상 파괴 운동(Iconoclasm)이 중요한 실천으로 등장한 것도 바로 이러한 흐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 주 성찬을 준비하면서 두 개의 분급 스테이션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2월 성찬 때는 분급에만 10분이 넘게 걸렸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조금 줄이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성찬이라는 가장 거룩한 일에 성도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제정사—“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와 성령 임재의 기도를 마친 뒤, “Now the table is ready, please come forward to receive God’s grace.”라고 말하며 뒤를 돌았는데, 세상에 컵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두 개를 준비하면서도 잔이 두 개 필요하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제 실수였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 성배는 어디에….’


누구에게 먼저 분급위원 역할을 부탁드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친교팀 분들께 먼저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교우들을 먹이기 위해 늘 애쓰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찬상을 등지고 회중을 바라보고 있던 저와 달리, 분급위원으로 나오신 분들은 이미 잔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셨던 모양입니다. 감사하게도 서로 눈짓을 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역시 상을 차리는 분들이라 그런지 상 위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금세 알아보셨던 것 같습니다. 잔을 맡기로 하신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이미 자리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첫 스텝은 조금 꼬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해서 성도들과 함께 성찬을 준비하고 나누려 합니다. 이미 차려진 상에 와서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함께 성찬을 준비하고 나누는 일에도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다빈치 코드』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성배를 찾던 이들은 조금은 황당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성배는 물건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어떤 기념비적인 물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그분의 말씀을 담은 사람이 바로 성배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로 세워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주인의 부르심에 따라 빚어지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되는 그릇들. 하나님이 담겨 쓰임받는 그릇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