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 목회칼럼] 천국의 조각을 담은 쇼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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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칼럼은 2청년 리더 중 한분인 김영민 형제가 나눠 주셨습니다. 러미지 세일에 주신 은혜를 여러분도 함께 누려보세요.
저도 이번 러미지 세일에서 티셔츠 세 장과 고풍스러운 유리컵 두 개를 샀습니다. 하지만 제게 남은 것은 분명 그 이상입니다.
세일 첫날, 셋업을 위해 교회에 일찍 가야 했지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원래 시간 보다 20분이 지난 뒤에야 이키반 형제 차에 엉거주춤 다가갔습니다. 귀에 닿은 말이야 책망이었지만 눈동자와 입가에는 장난기가 한가득인 형을 보고는 (형에게 늘 그러듯) 실없고 우스꽝스러운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창 밖을 내다보았는데, 아침 바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모든 힘든 일을 도맡았던 정선민 형제는 나이로는 저보다 어립니다. 하지만 '힘이 닿는 대로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을 때, 제 안에 차올랐던 감정은 존경이었습니다.
때때로 일손을 놓고 교인분들이 마련해 주신 돈까스, 김밥, 고기를 먹었습니다. 도넛과 커피, 아이스크림과 비타500을 나무 밑 그늘에서 먹기도 했습니다. 마치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나무 아래에서 새참을 나눠먹는 농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기쁨을 누리며 사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러웠고, 동시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도 느꼈습니다.
햇볕 밑에 앉아 물품을 둘러보는 손님들을 바라보면서 서울이형과 나눈 대학원 생활에 관한 조언도 기억납니다. 위축되어 가던 제 마음에 조용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옷걸이에 찔려 손가락을 빨고 있는 저를 본 현지 누나는 차분하게 반창고와 연고를 꺼내와 십자 모양으로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 한국어도 아니고 외계어도 아닌 잘 들리지도 않는 말들을 우물거렸습니다. 컵 두 개를 1불에 퉁치고 싶다고 억지 부리던 손님에게 제대로 내라며 손을 내젓던 형제님과 눈이 마주치자 둘 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무해한 모습'을 한 채로 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그 누구보다 부드러운 환대로 손님들에게 다가간, 그래서 많은 힘이 요구되는 일을 거뜬히 해낸 현호 형. 미시간에서 차로 다섯 시간 길을 달려와서는 더 일찍 못 와 거푸 죄송하다는 주은이. 러미지 세일이 즐겁고 별 탈 없이 진행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그야말로 모든 것을, 어쩌면 자신마저 잊은 듯했던 간사님. 남은 물품을 올네이션스 교회에 기부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참 고맙다며, 늘 고생이 많다며 어깨를 토닥이던 신범이 형의 손길에 '사는 게 좋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몇 페이지고 더 써내려 갈 수 있는 이런 류의 잔상들이, 형태도 감각도 제각각인 잔상들이 이 일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 안에 남게 되었습니다. 각자가 느낀 그 감정의 깊이는 가늠할 수조차 없겠지요. 그리스도의 공동체. 하나 됨. 끈끈한 사랑. 동행. 함께 땀 흘리며 발견한 기쁨. 하나 같이 근사하고 숭고합니다. 일상과 경험 속에 넘쳤으면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모든 아름다운 가치와 관념이 그러하듯, 단어들만 뚝 떼놓고 생각하고 있자면 어딘가 헛헛합니다. 속 없는 호빵인 줄 모르고 달콤한 팥을 기대하며 한입 크게 베어 물었지만 입안에 도는 건 퍽퍽한 밀가루 맛인 상황과 같은 감정입니다.
제 짧은 생각은 이렇습니다. 앙꼬는 정황(context)이다. 정황이 비어 있는 좋은 말, 그것이 바로 잔소리다 – 앙꼬 없는 찐빵! 방 좀 치우라는 부모님의 간청은, 어른이 되어 자취하게 된 후 여러 날을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은 곳에서 지내던 중 집에만 오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눈살을 찌푸린 채 발에 채이는 장애물들에 분통을 터트리다가 ‘그 사랑스럽고 반쯤 잊힌 음성’이 퍼뜩 떠오르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구체성과 무게와 알맹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은 누구나 아는 진리이지만, 정황이 없이는 잔소리인 셈입니다.
러미지 세일은 우리의 동일한 context입니다. 그 안에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text를 담았습니다. 500쪽짜리 책 열 권에 적어도 모자랄 양입니다. 하나님을 닮아 가는 일이 제자리인 듯 보일 때, 가끔은 심지어
역주행하는 것 같아 스스로가 미울 때 위로를 주는 말씀 중 하나는 “질그릇에 담긴 보배”입니다 (고후 4:7). 아끼는 장난감 마냥 이 말씀을 애지중지하던 중 생각해 낸 기똥찬 비유들도 나름 있답니다. Dollar tree에서 산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캐비어 (맛본 적은 없지만 상징적이니까요). Trader Joe’s 쇼핑백에 넣은 고려청자. 이건 역사지만 – 마구간에 임하신 메시아. 이스라엘을 구한 라합. 교회의 반석이 된 한 어부. 소박하고 '별 기대할 게 없는' 정황일수록 예수님의 임재가 더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면, 즉 있을 수 없는 대비가 있음으로써 당신의 영광이 더욱 찬연해진다면,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크리스천의 실력이자 연륜이 아닐까요?
러미지 세일은 우리 모두에게 크고 귀중한 프로젝트였지만, 하나님의 사업에 비하면 한없이 작을 테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전도사님이 달란트 시장을 회고하며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가끔 맴돕니다: “아이들에게 작은 천국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몇주 전 ‘선교는 목적이다’라는 설교를 거두는 기도 중에 목사님이 하신,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저희 모두가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이웃에게는 복이 되게 하옵소서.”
종이백에 담긴 천국의 파편? 작은 일을 통해 이웃에게 작은 복이 되다. 이를 위해 함께 일할 때 교인들이 서로를 기뻐하다. 끝으로, 이 일을 경영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다. 이 모든 인상들이 자석들끼리 달라붙듯 기이하게 합쳐져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은 어쩌면 이 소중한 경험을 묘사한 한 폭의 그림을 이루는 퍼즐 조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림이면 뭐 어떻습니까? 우리가 서로를 계속 기뻐한다면, 지금처럼 같은 마음을 품는다면 그 광경 자체가 완성된 작품이 아닐까, 사랑의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러미지 세일 덕분에 2청년부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수련회로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원금도 지원금이지만, 저희는 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기대입니다. 하물며 수련회는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식이죠. 부끄러움으로 고백합니다만, 수익은 아무래도 좋았던 것입니다. 1달러 지폐 두어 장 쥔 손을 자랑스레 흔들며 활짝 웃던 교우들의 얼굴이 글을 쓰는 지금 스쳐 지나갑니다. 겸사겸사 다 즐거웠던 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수련회에서 새겨 주실 또 하나의 작품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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