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목회칼럼] 사랑 안에 안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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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예수사랑교회는 노동절 기간의 주일을 안식주일로 지킵니다. 올해는 9/6일 주일이며 현장 예배 없이 오전 10시 온 세대가 함께 온라인으로만 모입니다.
**2청년 수련회가 웨슬리 우즈 캠프에서 진행됩니다(9/5-7). 저녁 7시 집회는 모두에게 오픈입니다. 250 Stam St, Williams Bay, WI 53191
저는 삶의 많은 기간을 교회 건물에서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는 교회 건물 4층 사택에 살았고, 인천으로 이사한 후에는 교육관 5층에 있는 사택에서 살았습니다. 자연스레 ‘관리 집사’의 역할도 맡게 되었습니다. 주일예배가 끝난 후 교회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등이 켜진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문을 잠그는 일이었습니다. 매주 기쁜 마음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래도 견디기 힘든 일이 하나 있었으니… 휴일에 교회 작업에 동원되는 일이었습니다. 광복일이다, 삼일절이다 해서 친구들과 놀 생각을 하고 있으면, 휴일 전날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익일 작업 목록’이 전달되곤 했습니다.
어느 해 현충일에는 교회 담벼락 옆에 감나무 세 그루를 심었습니다. 학교에서 식목일에 손바닥만 한 묘목을 심어본 적은 있어도, 제 키보다 큰 나무를 심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땅을 깊이 파야 하더군요. 나무가 곧게 자라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제헌절에는 4층에서부터 계단을 물청소했습니다. 가족들이 각각 한 층씩 맡아서 먼저 세제로 바닥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물을 내려보내면, 빗자루나 스퀴지 같은 것을 들고 물이 옆으로 넘치지 않도록 아래층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어떤 날은 자동차 도색을 하기도 했고, 다른 날은 반 나절 동안 교회 창고를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휴일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11시쯤 일어나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숙제를 조금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교에 가서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아버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에서는 사람의 성격 유형을 Type A와 Type B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Type A에 가까운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시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매사에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두 성격 유형을 설명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저도 A타입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서울에서는 운전하면 시간 약속에 늦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 지하철을 타고 다녀요. A타입들은 휴일을 힘겨워해요. 뭐라도 하려고 하거든요.” 교수님의 마지막 한마디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제 삶의 질문 하나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휴일마다 뭐라도 만들어서 하셨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공개되었습니다. 아직 감히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제목이 퍽 마음에 듭니다. 우리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가장 흔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노동입니다. 때로는 중노동이고, 때로는 과도한 노동입니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성취하고,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나타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좌절하고 때로는 분노합니다. 거절 편지와 불합격 소식에 무너지고, 응답되지 않는 기도 제목에도 실망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했으니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연히 중노동과 과노동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 줄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무가치함을 느낍니다.

기독교 복음은 완전히 반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가치가 귀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역적으로 이미 결정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성취했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에 의해 우리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며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악하고 연약했던 때에 십자가를 통해 이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못났을 때에도 여전히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은 진짜 사랑이지요. 사랑받는 사람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시는 분의 신실하심 때문에 가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은 우리의 성취가 아니라 이 사랑에 기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 볼까요?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가장 좋은 무기는 중노동이나 과노동이 아니라, 때로는 휴식입니다. 11시까지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게임을 해도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무가치함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삶의 목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번 안식주일에, 그리고 이번 연휴에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줄을 잠시 놓아 보십시오. 수련회장에서 다른 청년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해 보고, 가정에서는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려 보십시오.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됩니다.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안식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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