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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말씀으로 여는 아침] 마태복음 12:38-42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은 파송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나가서 전해야 했습니다(마 10:7). 단서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유대인들만 전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이방 사람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 사람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아라. 오히려 길 잃은 양 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거라’”(10:5-6) 하지만 제자들이 마주한 유대인들은 모두 복음에 적대적이었습니다. 쓸데 없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예수님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제일 먼저 복음을 받았지만,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성장하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낯설고 신기한 경험입니다


마태복음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거절’을 여러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표징(sign)”을 구합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이 말하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우리가 당신의 말을 믿어야 하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기적을 보여주면, 마음을 바꿨을까요? 아닙니다. 믿기 위해서 표징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거절할(disapprove) 이유를 찾기 위해 물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39절)로 규정하시면서 요나의 표징만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겠지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갇혀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3일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비유였습니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도 믿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기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날선 응수가 나옵니다. 41-42절,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니느웨는 범죄가 가득했던 앗수르의 도시였지만, 요나의 선포에 회개했던 도시였습니다. 남방 여왕은 멀리서부터 솔로몬을 찾아왔던, 그의 지혜를 흠모하고, 그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 네, 이방인이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되었지만, 오히려 복음을 거절했던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고, 마지막 심판 때에 그들이 너희 유대인들을 정죄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복음의 방향이 유대인 중심에서 이방인 중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뒤에 이어지는 마태복음의 이야기는 이제 복음을 열렬히 환영하는 이방인들을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복음이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는가. 우리는 여전히 복음에 목말라하고 복음을 기뻐하는가. 흔한 것은 그 가치를 잃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복음도 자꾸만 낯설게 해야합니다. 매주 드리는 똑같은 예배가 아니라, 매일 드리는 똑같은 기도가 아니라, 매일 새로 만나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우리와 그분의 관계가 깊어져야만 하고, 하루하루 걸을 수록 주님을 더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의 여정 가운데, 새로이 예수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그분을 향한 새로운 마음이 부어지길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오늘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고 있나요?

  2. 익숙한 신앙, 익숙한 복음을 어떻게 낯설게 하고 있나요?

  3. 나는 신앙적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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